10월 24일
지하철을 타고 81가에 내려 바로 연결되는 자연사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센트럴 파크와 바로 접해있는 자연사 박물관은 "1869년에 설립된 이래, 인류 문화와 자연 및 우주에
관한 정보를 탐색하고 해석, 전파하는 사명을 추진해 왔다"고 한다.. 그렇지만, '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과 같은 책을 보면
이 자연사 박물관에 대해 꺼림직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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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하퍼의 ‘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원제 ‘Give Me My Father's Body’)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보조큐레이터 프란츠 보아스의 인종 표본 연구 요청에 따라 1896년 피어리는 에스키모 여섯 명을 뉴욕으로 데려옵니다.
그리고 그들을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전시하여 미국인들에게 인기있는 놀이갯감으로 만들어 입장료를 챙기고,
새로운 풍토에 적응하지 못한 에스키모인들은 2년 사이에 네명이 죽어갑니다. (북극에는 감기 바이러스가 없다고 합니다.)
남은 두명 중 한명은 북극으로 돌아가고, 부모도 없이 혼자 남은 미닉이라는 소년은 건물 관리인에게 입양되어 미국에서 키워집니다.
(물론 에스키모의 말은 모두 잃어버리고.)
뒤틀린 야심으로 네명의 생명을 앗은 미국 당국의 만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미닉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짜로 아버지 키수크의 장례를 치른 후 그 유해를 빼돌려
자연사 박물관에 공룡이나 원숭이뼈와 나란히 전시해놓은 것입니다.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의 몸이 다 발라져 구경꾼들 가운데 유골로 전시되어 있는 장면..
진실을 안 미닉은 큰 충격에 휩싸이고 “아빠를 돌려달라”며 유골을 돌려받기 위해 싸웁니다.
1907 년 소년의 소식이 신문에 소개되어 이 사건은 미국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지만
미국정부는 에스키모 유골을 전시하는 것이 합법적이라고 주장하며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 미국 자연사 박물관의 '자연사'에는 유러피언의 역사를 제외한 모든 현상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고로 백인 유러피안만이 인류이고 나머지는 모두 자연인 셈이지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위해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자신의 말도 뿌리도 잃어버린 이방인.
28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미닉은 그린란드와 뉴욕을 오가면 방황해야 했으며 끝내 아버지의 유골을 찾지 못했습니다.
한많은 미닉 아버지의 유골은 그가 죽고 난 뒤 80여년이 지나서야 자연사박물관을 떠나 그린란드에 안착되었답니다.
자신의 북극점 정복을 사심없이 도와준 순수한 에스키모들을 철저하게 이용했고 능욕한 피어리에 속아 미국땅을 밟은지 96년만에..
'에스키모'는 '생고기를 먹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뜻이므로, 그들의 비운에 공감한다면 그들을 부르는 명칭을
이눅티투트어로 '사람'을 뜻하는 '이누이트'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당부가 있었답니다.
* 저자 : 켄 하퍼
1945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 출생. 1966년 결혼 후 태나다 노스웨스트 테이토리
에스키모 거주 지역 누나부트에서 교사 생활 시작. 이주 직후 백인 아내와 이혼.
캐나다 정부의 영어전용적책에 의문을 갖고 에스키모 언어인 이눅티투트를 배움.
에스키모들로부터 '일리사이지쿠타그', 즉 '키다리 선생'이라는 별명을 얻음.
1974년 교직 은퇴 후 북극 망에 서점 개업. 에스키모 문화에 대한 집필활동 시작.
1977년 북극의 '땅끝마을Thule'인 그린란드 카나크에서 에스키모 여인과 결혼.
현재 에스키모 사회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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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박제된 동물이나 세계 각지의 유물이 들어차 있는 전시실을 돌아보니.. 좀 지루했다.
공룡파트를 지나다 보니 작은 스크린으로 공룡 진화에 대한 영상물을 틀어주고 있었다.
컴컴한 곳 한쪽에 앉아서 보는데 종별 진화 도표를 보며 차례 차례 설명을 하다가 다 끝나니
도표가 분해되며 자연스럽게 그 층의 평면도로 바뀌면서 이 종들에 대한 더 자세한 것은
바로 이 층에서 볼 수 있다는 안내 멘트로 끝나는 것이 꽤 인상적이었다.
전시물을 둘러싼 유리에는 흥미를 유도하기 위한 중요한 질문들이 쓰여있었는데,
예를 들면 공룡뼈가 전시된 유리에는 '공룡의 뇌는 정말 두개였을까?'란 질문이 있고
그 아래에 코끼리를 비교하여 쓴 답이 적혀있었다.
아마존 전시관에 올라가니 원주민의 영상물을 틀어주고 있었는데 숲을 누비며 독침으로
원숭이를 사냥하는 부자에 대한 얘기였다.
또 책에서만 보던 원주민들이 전리품으로 적의 머리가죽을 벗겨 찌고 건조시켜 만든
장식품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처음엔 시커멓고 치렁치렁 긴 머리카락을 단 조그만 머리가
공중에 달려있어서 원숭이의 머리인가 했는데.. 가만히 보니 밑에 단계별로 만드는 방법을 상세히
설명해 둔.. 죽은 사람의 머리로 만든 장식품이었다. 세개 정도 전시되어있었는데 흥미로웠다.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들도 많았고 숙제를 하러 찾은 학생들도 많았다.
사춘기의 남자 아이를 아버지가 데리고 설명을 해주며 같이 앉아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장애인들도 전동차 타고 자유롭게 다니고..
다 돌아보고 나와서 외관을 보니 고풍스러웠다. 마당의 울창한 나무들 속에서 새들이 지저귄다.
지하철을 타야하는데 괜히 센트럴파크를 따라 걸었다.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개와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많고, 공기도 차고 상쾌했다.
이 곳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을 바로 자연사박물관이나 여러 박물관을 찾아서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할 수 있다. 그걸 충분히 활용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배우는 애들이야 좋겠지만,
세계 각지의 온갖 유물들을 그렇게 모아둔 것이 어째 힘있는 나라의 횡포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문득, 박물관과 연결된 도서관으로 들어가던 한 배낭 맨 학생의 모습이 떠오른다.
47명의 큐레이터와 200명의 연구 과학자, 70명의 박사와 대학원생, 3200만 종의 표본과 인공물,
2개의 하이테크 분자 실험실, 매년 100회의 전세계 모든 지역에 대한 조사 여행, 전세계적인 연구,정책,
교육에 전념하는 다양한 학문 분야의 생물 보존 센터, 서반구 대규모 자연사 도서관..
그들이 정녕 올바른 가치관으로 의미있는 연구를 하고 세계와 공유하게 되길..
Comments (2)
이 사진들 디지털인가요? 아님 35mm 인가요?
꼭 알려주심 고맙겠고요 당신의 글 솜씨와 사진 솜씨가 예사가 아니군요.
부럽고 있어요.
Posted by 권석찬 | September 28, 2003 9:07 AM
뉴욕가서 찍은 사진들은 모두 캐논 G2로 찍은 거예요.
칭찬해 주시니 감사~
거의 기록해야 한다는 일념에만 충실한 사진들인 걸요.
더 좋아지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
Posted by lunatree | September 29, 2003 11:28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