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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3

2002/10/21 03:09 from 분류없음

10월 21일
월요일 아침.
태연이네 학교 School of Visual Art에 같이 갔다가 Wall st의 금융회사에 다니는 고등학교 선배를 오후에 만나기로 했다.

맨하탄으로 나가는 길이 너무 많이 막혀서 늦어버렸다.
8에브뉴에 40st와 42st에 걸쳐 위치한 Port Authority Bus Terminal(뉴저지와 맨하탄을 오가느라 아주 많이 드나들었다)에서
내려 지하철역으로 갔다. 뉴욕의 지하철역들은 100년 정도 됐다고 하는데, 바닥에는 엄청난 껌자국 들이 시커멓게 들러붙어있고
(내리막길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에 껌자국도 경사를 따라 밀려나있다), 환기도 잘 되지 않는데다 온기를 찾아 모여든 홈리스들
덕에 냄새도 난다. 여름에는 더운 열기가 가득한데다 홈리스들이 갈긴 오줌 냄새까지 올라와서 거의 정신이 혼미하다고 한다.

거미줄처럼 얽힌 천정 낮은 오래된 지하도로는 출근 시간이라 사람들이 아주 붐비고 있었다.
N이나 R노선을 타는 플랫폼에 도착하니 색스폰 소리가 들렸다.
걸어가면서 가만히 들어보니 끈적거리는 블루스나 재즈도 아닌.. 바흐였다.
사람들을 많이 지나 소리의 정체를 만나니 형형색깔의 옷을 레이어드룩으로 입은 안경을 낀 흑인 여성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종종걸음을 치며 일터로 가기 위해 플랫폼 위에 서 있는 뉴요커들 위로, 도시의 회색 지하 동굴 안에 그녀의 바흐가 울려퍼진다.
이후에도 종종 오전 시간에 타임스퀘어 역에서 N,R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그녀의 색스폰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홈리스 같아 보이지도 않고, 오히려 엘리트 음대생같아 보였다. 볼 때마다 그녀의 칼라풀하면서도 의젓한 패션에
호감이 갔는데, 흰색 셔츠와 분홍색 니트, 그리고 흰색 털모자에 밝은 뿔테를 코에 걸치고 색스폰을 불던 날은 정말 예뻐보였다.

왠지 시공에 혼란이 오는 비현실적인 감상에 빠져있다가 지하철이 오자마자 바쁘게 사람들의 무리와 함께 올라탔다.

유니언 스퀘어에서 내리니 간단히 아침 장이 선것 같았다. 라틴계 장사꾼이 신선한 야채와 과일 빵을 파는 수레를 지나
어차피 늦은 거 화장실도 가고 커피나 마실까 하고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흘.. 마침 화장실이 고장 났다기에 옆에 맥도널드로 들어갔다.
덩치큰 흑인 남자들이 좁디좁은 맥도날드 의자에 눕듯이 앉아서 다리를 내밀고 있어서 지나가기가 어려웠다.
혼자, 또는 둘씩 햄버거를 헤치운 흑인들은 아침부터 무척 피곤해 보였다.
나른하고도 매서운 눈빛으로 맥도널드로 뛰어 들어온 동양 여자애 둘을 흘끗 보았다.
그곳에서 커피를 즐기기란 어려울 거 같아서 그냥 학교로 갔다.

SVA는 14st, 1av에서 3av사이에 몇개의 건물에 흩어져 있다.
맨하탄 대부분의 학교는 도로변 건물에 있는데 여러 건물을 사용할 경우, 수업시간에 맞춰 강의실을 옮겨다니느라
거리를 부지런히 쫒아다녀야 한다. 쉬는 시간 동안 몇 에브뉴 떨어진 강의실로 이동하려면 가는 중에 핫도그 사서 뛰어가며
끼니를 때우고 다음 수업에 도착해야 한단다.
그러니 당연히 멋진 교정은 바랄 수도 없는데, NYU는 앞에 있는 워싱턴 스퀘어 공원을 캠퍼스 삼아 이용하고 주위에
많은 건물을 NYU로 만들어서 NYU 거리 분위기가 물씬 난다.
SVA 옛날식 계단을 올라가서 오밀조밀있는 컴퓨터실 중에 한 곳으로 들어가 괜히 친구따라 illustration 10 강의를 들었다.

12시에 다시 42st으로 가서 유진오빠를 만났다.
오빠와 함께 SOHO로 갔는데, 월요일 점심이라 사람들도 없이 무척 한산했다.
각종 재밌고 아이디어 넘치는 발랄한 칼라의 생활소품가게도 구경하고, 정원용품 가게, 옷가게도 보고, 미술품 가게도 보고
오빠의 단골이라는 멕시칸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맛있었다.. 흐...
애플 컴퓨터 매장은 정말 미래적인 인테리어와 디자인이 돋보이는 멋진 공간이었다.
천창이 있었는지 전체적으로 무척 밝고 투명과 흰색, 메탈이 조화를 이루었는데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는 듯한 투명판에 LCD 모니터가 박힌 컴퓨터들과 기발한 모양의 스피커들에 감탄 안할 수 없었다.
2층은 중앙 부분이 1층과 트여있고 중간을 가로지르는 다리처럼 연결되어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컴퓨터와 탁자와 푹신한 동그란 의자가 아주 앙증맞았다.

좀 돌아다니다가 SAKS FIFTH 백화점과 유태인들이 많은 다이아몬드 거리를 구경했다.
티파니 매장에 갔는데 엄마와 쇼핑 온 일본 여자애들이 자주 보였다.
5층인지 6층인지까지 있는데 층마다 실버, 골드, 다이아몬드와 보석류, 준보석류 등으로 분류되어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개나 소나 다 하고다니는' 실버 체인 목걸이와 팔찌를 구경하고 내려왔다.
오빠가 저렴하다며 보여준 그 은체인은 한 25만원정도 했던 거 같다.
선배는 실버 머니클립을 샀는데 색이 변해서 와서 무척 비싼 가격에 세척까지 했었다고 한다.
색이 변한다고 불평을 하자 순은이니까 변한다며 자주 와서 세척을 하면 된다고 했단다.
그래도 진정한 미국 부자는 머니클립을 쓴다는 것에 마음을 가라앉혀야지...

CompUSA에 매장에서 노트북을 구경하고, 성 패트릭 성당에 들어가 잠시 앉아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가 혹시 나홀로 집에 나온 그 성당이던가?
성당은 멋졌지만,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서 소란스러웠다.

오빠와 헤어져 파슨스 앞에서 효진이를 만나서 집에 왔다.
터미널 앞에서 한 흑인 남자와 멕시칸 남자가 마주보며 웃고있었다.
사람들이 그 주위를 빙 둘러서서 구경을 하고 있길래 왜 저러나 하고 보니
서로 옷을 벗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흑인 남자가 주먹으로 멕시칸 남자의 얼굴을 빡-! 하고 때렸다.
덩치가 왜소한 멕시칸 남자가 그 한대를 맞고는 슬금슬금 도망을 가서 싸움은 시시하게 끝나고 말았다.
어떤 이는 생전처음 해외여행이라고 미국에 왔는데 공항 내려 나오자 마자 바로 앞 도로에서 목격한 것이
경찰과의 범인과의 총격전이었다고 한다. 가뜩이나 쫄아있었을 땐데..
아무튼 너무 빨빨거리고 많이 돌아다닌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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