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딸에게 물어보며 딸 가슴에 손을 대곤 "강한 마음을 갖도록 해" 라고 말해주었다.
3초 정도. 그대로 있으면서 나와 눈을 맞추며 '내가 어땠는지 엄마가 이해하나봐...'와
'강한 마음이라니 자신없어...' 사이에서 멋쩍어 하는 딸의 눈망울을 보니,
이 아이가 살아가면서 그런 마음을 먹어야 할 많은 순간들이 스치는 것 같아. 참 슬프더라..
지금의 나조차도 아직 똑같이 되뇌고 있는데.
1. 봄을 기다려요
내 친구 보현이에게 동생이 생겼대요. 놀이터에서 어떤 언니가 동생 손을 잡고 다니며 둘이 즐겁게 노는 것을 보았어요. 엄마에게 나도 동생을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혼자 노는 건 심심해. 동생 있어서 같이 놀면 좋겠어.”
어느날 엄마는 나에게 귓속말로 비밀을 말해주겠대요. “이제 너도 동생이 생길거야.” “정말?” “어~” “몇밤 지나면?” 이백팔십밤 정도?” “그렇게나 오래 걸려? 싫어 빨리 낳아줘.”
나는 매일 매일 엄마에게 물어봤어요. "동생 언제 나와?" "봄이 되면 나와." "봄이 언제 되는데?" "어서 봄이 왔으면 좋겠어요. 가끔 엄마 아빠와 함께 산부인과에 가서 뱃속의 아기 모습을 화면으로 봤어요. 아기는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심장 소리를 들을때는 크게 쿠궁쿠궁 하는 것이 신기했어요.
봄을 기다리면서 나는 동생이 생기면 뭐가 좋을까, 무엇을 하고 같이 놀까 생각하다가 동생에게 필요할 것 같은 장난감을 미리 사달라고 하고 내가 좀 갖고 놀아도 좋겠는걸? 했어요. 하지만 엄마 아빠는 동생이 그걸 좋아하지 않거나 필요하지 않으면 어떡하냐며 안된대요. 그래도 나는 동생에게 그 장난감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동생은 태어나도 금방 그걸 갖고 놀 수는 없다고 해요.
엄마의 배가 점점 불러오고 엄마는 나를 안아주기도 힘들어 하셨어요. 친구 보현이의 동생은 이제 많이 컸는데 어느날 보현이가 나에게 말했어요. 동생이 태어나도 하나도 좋을게 없다고. 엄마 아빠는 동생만 좋아하고 나는 싫어하게 될 거래요. 나는 정말 그럴까 불안했어요. 이렇게 나를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정말 변할까? 하루는 방에서 책을 보는데 거실에서 웃음 소리가 나서 빼꼼히 내다봤더니 아빠가 엄마 배에다 대고 “아가~ 아빠다~ 사랑한다~” 하고 말하며 웃고 있었어요. 정말 보현이 말이 맞나 봐요.
엄마는 배가 터질듯해졌고 나와 함께 뛰어놀지도 못했어요. 잠자리 책을 읽고 나서 불을 끄고 누우니 다시 보현이 말이 생각났어요. 나는 감출 수 없이 훌쩍이고 말았어요. 엄마는 놀라며 물었어요. “왜 그러니? 무슨 일이야? 무슨 걱정있어?” “동생 태어나면 엄마 아빠 나 싫어할 거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 아빠가 서진이를 사랑하는 것은 변함이 없어. 동생이 태어나도 지금처럼 똑같이 서진이를 사랑할 거야.” “거짓말!” “진짜야~” “그럼… 두고볼거야..” 나는 동생이 태어나서 엄마 아빠가 정말 변할지 안할지 지켜볼거에요.
2. 내 동생이 태어났어요.
어느덧 봄이 되었어요. 엄마는 아빠와 함께 마트에 다녀온 후 나에게 저녁을 차려주다가 갑자기 아빠에게 병원에 갈 준비를 하라고 하고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어요.
저녁을 막 먹으려던 나는 불안해서 엄마에게 “어디가? 가지마” 했어요. “엄마 병원 가서 동생 낳고 올게. 서진이는 저녁 잘 먹고,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잘 놀고 있어~” “싫어 가지마.” “서진이 동생 태어나려고 해서 병원 가야돼. 엄마 금방 올게.”
나는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울었지만 엄마가 병원에 갈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엄마는 내가 먹고 싶다는 꽁치구이를 차려주고 세 숟가락을 먹는 동안 함께 있다 할머니가 오자 병원으로 갔어요.
저녁을 먹고 나서 엄마랑 아빠는 지금 뭘할까, 아기는 어떻게 됐을까 생각에 놀이에 열중할 수도 없었어요.
밤 늦게 할머니가 “동생 태어났대 서진아~ 서진이랑 똑 닮았댄다.” 하고 말해줬어요. 그날 밤에 나는 할머니랑만 잤어요. 나는 동생 꿈을 꾼 것 같아요.
아침이 되자 어린이집에 갈 준비를 하면서 할머니가 어린이집이 끝난 후에 동생 보러 가자고 했어요. 나는 엄마가 더 보고싶었지만 동생도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어요.
할머니 손을 잡고 병실에 들어서니 엄마가 병원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있었어요. 나는 “엄마~”하며 엄마에게 달려가 안겼어요. 엄마는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며 “누나가 된 걸 축하해” 라고 안아주었지만 아빠와 할머니는 엄마한테 너무 세게 안기거나 밀면 안된다고 주의를 줬어요. 엄마는 아기를 낳은 후에 몸이 약해서 조심해야 한다구요.
그리고 옆에 아기 침대를 끌어와 동생을 보라고 했어요. 동생은 포대기에 꽁꽁 싸인 채로 자고 있었는데 꼭 애벌레 같았어요. 나는 참 작다.. 하며 신기해했는데 엄마가 한번 동생을 만져보래요. 좀 겁이 났지만 동생 볼을 손가락으로 건드려봤어요. 아주 부드러웠어요. 이번엔 발도 한번 보라며 포대기를 들추니 아주 아주 작은 발이 나왔어요. 나는 발을 보고는 막 웃음이 나왔어요. “이 발로 어떻게 걸어 키킥”
동생을 보고 엄마 옆에서 놀다보니 할머니가 집에 가자고 해요. “엄마는 집에 언제와?” 하니 병원에 있다가 조리원에 있다가 집에 온대요. 또 몇 밤을 자고서야 집에 온다기에 나는 동생이랑만 같이 있는 것이 심통이 났지만 이제 누나가 되어서 의젓하고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난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아주 잘 지냈지요.
엄마가 있는 조리원에 세번 갔는데 갈 때마다 아기를 유리창 너머로 보고는 엄마와 만나 얘기를 했어요. 엄마는 나에게 그림 선물도 해주고 편지도 줬는데 공주처럼 나를 예쁘게 그려줘서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나는 어서 동생이랑 엄마가 집에 와서 같이 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3. 집에 온 동생
어느날 어린이집이 끝났을 때 아빠가 데리러 와서는 집에 엄마가 왔다고 했어요. 나는 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마구 뛰어왔죠. 집에 들어와 “엄마~” 하고 소리치니 정말 엄마가 나와 나를 안아줬어요.
그리고 방에 들어가보니 동생이 누워있었죠. 여전히 작고 애벌레 같았지만 이번엔 손도 잡아보고 발도 또 만져봤어요. 햐 귀엽다~~
그런데 갑자기 동생이 울기 시작했어요. “앙~앙~” 아주 시끄러운 소리로. 엄마가 동생을 안아주고 달래는데도 그치질 않아요. 동생은 눈을 질끈 감고 온몸이 빨개지며 계속 “앙~ 앙~” 하고 악을 쓰고 울어요. 도대체 왜 그러지. 나는 너무 불안해져요. 나는 빨리 아기를 달래라고 엄마 아빠에게 말해요. 엄마 아빠는 아기를 안고 어르고 젖도 먹여보지만 아기는 계속 울기만 해요.
나는 동생이 우는 소리가 정말 듣기 싫어졌어요. “왜 그치지 않는거야! 어서 그만하게 해봐!”
하지만 동생은 한참을 더 울었어요.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아요. 나는 기분이 나빠지고 동생도 미워졌어요. “울기만 하는 동생 보기 싫어.”
식사 시간이 되어 밥을 먹으려는데 또 동생이 울어댔어요. 엄마는 같이 밥도 먹지 못하고 동생을 안고 달래요. 나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요. “시끄러워 이 매미야!”
동생이 집에 온 후에 시도때도 없이 나는 악을 쓰며 우는 소리를 들어야 했어요. 밤에도 몇번씩이나 몇시간씩 우는 바람에 나는 아주 짜증이 났죠. 게다가 엄마는 아기를 안고 있느라 전처럼 나랑 같이 만들기 놀이를 할 수도 없고 나를 많이 안아주거나 같이 잠도 못자고, 심지어 밥을 먹을 때도 아기 때문에 엄마랑만 먹고 아빠가 아기를 보거나, 아빠랑만 먹으며 엄마가 아기를 봐야만 했어요. 아기가 울 때는 항상 나는 뒷전이고 내 얘기에도 엄마 아빠는 건성으로만 대답하고 뭐든 내가 알아서 하래요.
난 아기 때문에 이렇게 달라진 것이 정말 화가 났어요. 보현이 말이 맞았어요. 동생이 생기면 나는 미워하고 동생만 이뻐한다는게 진짜였어요.
4. 매미랑 같이 살기
나는 이제 동생보다 더 크게 울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엄마 아빠가 정신을 차리고 나를 달래주겠죠. 그리고 동생처럼 아무것도 혼자 못한다고 해야겠어요. 그러면 엄마 아빠가 동생을 보다말고 나를 돌봐주겠죠. 모든 것이 다 마음에 안들고 짜증이 나서 계속 눈물만 나왔어요.
동생처럼 굴고 더 크게 울어야지 생각을 하기도 전에 조그만 일에도 울음이 터져나오고 아주 서러운 마음이 들어서 엄마 아빠가 달래다 지쳐서 이제 그만 그치라고 해도, 흐느끼며 눈물을 계속 흘렸어요. 나는 너무 슬펐어요. 그냥 전처럼 동생이 없었던 때로 돌아가서 엄마 아빠와 즐겁게 놀고 싶었죠. 그렇게 좋아하던 엄마도 이젠 싫어졌어요. 난 혼자가 되어버린걸요.
매일밤 동생은 울었고 나는 건드리기만 하면 소리를 지르는 아이가 되었어요. “시끄러워 이 매미야! 조용히 좀 해!”
어느날 나는 어지른 장난감과 그림 종이를 치우지 않고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에게 놀아달라며 바닥에 누워 떼를 쓰고 울었어요. 엄마가 “아기 좀 달랜 후 책 읽어줄게” 했지만 나는 “싫어. 지금 당장 해 지금!” 하며 발버둥을 치며 울었죠. 엄마는 아기 젖을 물리고 아빠가 내게 울음 그칠 때까지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어요.
동생만 봐주고 나를 또 혼내는 것이 화가 나서 방문을 세차게 꽝! 하고 닫으며 방에 들어가 침대위에 엎어져 엉엉 울었어요. 그러자 엄마가 방으로 들어왔어요. 엄마는 내 어깨를 붙잡고 눈을 바라보고 아무 말도 안했어요. 우리는 그렇게 서로 바라보기만 했어요.
그런데 엄마 눈에서 나처럼 눈물이 뚝뚝 흘렀어요. 나는 뜨끔 놀라 울음을 그쳤어요. 엄마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 때문에 속이 많이 상한 것 같았어요. 엄마는 나를 가만히 안고 한참 있다가 방을 나갔어요.
나는 내가 한 일들을 좀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동생이 울 때 ‘그러게 내가 낳지 말랬잖아! 아기 갖다 버려!’ 라고 소리친 일, 안되는 거 알면서도 엄마 아빠에게 당장 해내라고 떼 쓴일, 말해야 할 때 또박또박 말하지 않고 그냥 악을 쓰며 울기만 한 일.. 하지만 그래도 나도 억울하고 화가 많이 난다구요.
5. 매미가 또 우네
다음주가 되자 나는 동생 울음 소리에 좀 적응이 되었어요. 동생이 울기 시작하면 재빨리 “에잇!” 하고 다른 방으로 달아나는 방법도 있어요.
그리고 나는 여섯살 생일을 맞이했어요. 생일날 아침, 엄마는 두 살 때 엄마가 만들어준 흰 드레스를 입혀주고 머리를 예쁘게 빗어줬어요.
처음으로 빠졌던 아랫니는 새로 하얗게 나기 시작했고, 주말에는 아빠랑 뮤지컬을 보러갔죠. ‘분홍병사’라는 뮤지컬을 보는 동안 나는 무대에서 눈을 뗄 수 없었어요. 엄마가 읽어주던 잠자리 책은 엄마가 동생을 달랠 땐 아빠가 대신 읽어 주었어요.
이제 동생이 울면 우리 모두 “매미가 또 우네~”하고 크크크 웃었죠. 가끔 동생이 울어서 엄마에게 달려가 “동생 울어” 하고 말하면 엄마는 “음. 아직은 좀 더 울어도 돼” 하고 하던 일을 마저 하고 천천히 갈 때도 있어요. 울음 소리를 들으면 안다나요.
그래서 아기가 울면 엄마 아빠는 어떤 이유 때문인지를 맞혀보는데 갈수록 척척 맞혀가서 빨리 아기를 달랠 수가 있었어요.
나는 여전히 아기가 미울 때도 많지만 아기랑 아침 늦게 일어나 이불 위에 같이 누워서 하품하거나, 잠든 아기 얼굴을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아보거나(그럼 젖 먹고 토한 냄새 같은 게 나기도 하고, 좀 좋은 냄새가 날 때도 있어요), 울지 않고 놀고 있을 때 손을 잡거나 발바닥을 간지럽히거나, 웃기게 뻗어있지만 솜털처럼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만져보거나, 웃긴표정을 짓거나 오하고 입을 오므릴 때, 이상한 소리를 내며 말할 때, 엄마가 아기가 얼마나 무거워졌는지 안아보라고 해서 살짝 안아볼 때... 그런때는 아기가 좋아요.
그리고 심지어 동생이 똥을 싸며 울 때 엄마가 손을 잡아주라고 해서 잡아준 적도 있어요. 그건 진짜 진땀 나는 일이었어요. 내가 싫어하는 매미 소리를 내며 우는 데다, 아기도 똥냄새가 지독하기 때문에, 그리고 깔끔한 내게 아기 똥이 묻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에 나는 불안했지만 용감하고 의젓하게 손을 잡아주었죠. 아주 잠깐 동안이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엄마 아빠가 나에게 잔소리를 좀 많이 하는 것 같을 땐 “나 싫어? 나 싫고 애기만 좋아?”하고 물어보기는 해요. 그럼 언제나 “아니 우리 서진이 얼마나 사랑하는데. 동생이랑 너를 똑같이 좋아하지.” 하는 대답이 돌아오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놀러왔을 땐 모두 동생 곁에 앉아서 동생 얼굴만 쳐다보며 있어서 “이거 봐요. 나 이런 것도 해요” 했는데 돌아보지도 않지 뭐에요. 쳇! 나는 뾰로통 해져서 “관심없냐. 나한테 관심없냐..” 하고 중얼거렸더니 엄마가 듣고는 푸훗-하고 웃었어요.
생각해보니 내 이름에는 엄마 이름이랑 같은 글자가 ‘ㅈ’ 하나 뿐인데, 동생은 ‘ㅎ’이랑 ‘ㅈ’ 두개나 같아서 그것도 좀 불만이네요.
6. 나는 누나니까
어느덧 아기가 집에 온지 두달이 되었어요.
나는 이제 좋아하는 토끼, 고양이, 다람쥐는 물론 양이랑 생쥐도 잘 그리게 되었어요. 아마 여섯살이 되어서 그런가봐요. 아니면 누나가 되어서 그런가?
엄마가 그러는데 동생은 내가 웃길 때 제일 많이 웃는대요. 또 내가 지나가면 동생 눈이 나만 따라다닌대요. 그래서 동생 앞에서 이리 저리 움직였더니 정말 동생은 나만 뚫어지게 쳐다보았어요. 그리고 진짜 내가 얼러주니까 가장 크게 웃는거 있죠.
“동생은 누나가 제일 좋은가보다.” 엄마 아빠는 나를 부러워했어요.
하루는 어린이집에서 집에 돌아오니 아기가 보이지 않았어요. 엄마에게 형진이는 어디 있냐고 물었어요. 그러자 엄마가 “옆집에 줬어. 너 아기 싫어하잖아. 아기 누구 주라며. 그래서 줬는데? 집 조용하고 좋지?”
나는 동생이 없다는 소리에 머리 속이 번쩍하고 가슴이 덜컹 했어요. “에? 안돼. 왜 줬어. 주지 마. 빨리 데려와.” 나는 엄마한테 매달려 얘기했어요.
그러자 엄마는 빙긋 웃으며 아기는 다른 방에서 잠자고 있대요.
나는 정말인지 동생에게 가보았어요.
동생은 진짜 방에 있었어요. 내가 가까이 가니 잠에서 깨서 나를 보았는데 입을 크게 벌리고 꺄아 소리를 내며 웃었어요. 나는 “형진아~ 잘 잤어? 누나 없어서 심심했져?” 하고 엄마가 아기를 어를 때처럼 흉내를 내보았어요. 동생은 계속 나를 쳐다보면서 “아우~” 하는 웃긴 소리를 내요.
나는 키득 거리면서 동생의 터질듯이 빵빵한 볼을 오므려 붕어 입을 만들었어요. 내 동생은 매미도 되고 붕어도 되는 것 같아요. 온몸이 빨개지도록 울 때는 색색깔로 변하는 카멜레온 같구요. 젖 먹을 걸 잘 토하니까 토쟁이, 뱃속에서부터 딸꾹질을 잘하는 딸꾹질쟁이, 또 짱구 이마랑 머리 모양은 ’해럴드와 자주색 크레파스’ 동화책에 나오는 해럴드를 닮았구요.
그렇지만 정말 닮은 건 엄마가 보여준 사진 속의 어릴 적 나랑 제일 많이 닮았어요. 형진이는 내 동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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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생긴 후 샘내고 화내고 불안해하는 아이에게
아이가 아주 만족스러워할 정도로 충분히 그 아이에게만 집중하여 놀아주는 짧은 시간을 갖는 것 만큼 좋은 약은 없었던 듯 하다. 눈을 맞추고 꺄르르 웃고 놀다보면 아이의 스트레스가 씻겨져 나가는 것이 보인다.
그렇게 하고 나면 이후에 동생 챙기느라 바쁘더라도 별로 신경쓰지 않고 저 혼자 할일을 찾아 잘 한다.
엄마와의 사랑이 잔뜩 충전되어 있어서 자신이 흔들림없이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의 힘이 오래 가나보다.
어제 퇴근길에 습관처럼 네이트 접속.
이것저것 보다가 투데이에 걸린 '배두나 성형 전' 이미지를 클릭.
스타일쟁이 간지짱 배두나도 성형 어쩌고 하는 글에 첨부된 이미지들을 한장 한장 넘겨보며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잡지 모델로 데뷔한 배두나의 일상 사진들이 여러장 있었는데
넘기고 넘기다 5번째 사진을 보는 순간!
'어?? 어!!! 떠어~~~~' 할 수 밖에 없었다.
카메라를 응시한 배두나 학생 뒤로 지나가는 행인 둘이 있었으니..
누구게..
바로 십여년 전의 울 엄마, 아빠 였다.
푸짐한 실루엣과 D라인을 뽐내며 걸어가는 두 분의 모습을 보며
뭐야 이건.. 어이없고 너무 웃기잖아 ㅋㅋㅋ
배두나의 성형이 나와 연관이 있을 줄은, 이 글을 클릭해 보기 전엔 생각지도 못했다.
환승하러 걸어가면서 오빠와 언니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잠시 후 언니가 "찾은 사람이 대단하다"며 답이 왔다.
그러게,
그 십여년 전, 학창시절 아무 생각 없이 찍은 배두나의 사진과
하필 그때 그 뒤를 걸어가고 있었던 엄마 아빠와
그 사진들이 다시 인터넷에 떠돌다 투데이 메인에 뜬 것이며
그걸 마침 딸인 내가 다시 보게 되고, 그 흐릿한 모습에서 엄마 아빠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
모두 기가 막힌 우연이다.
마침 병원에서 퇴원하여 집에 계시는 아빠에게 전화하여 인터넷에서 한번 찾아보라고 알려줬다.
엄마도 같이 보곤 전화해서
"저 티셔츠는 옛날에 벌써 버렸던 건데, 뒤에 LG 붙어있는 건물 보이던데 여기가 어딜까"
그러곤 어이 없어서 허허 웃었다.
아빠가 심장 문제로 입원하셨다가 다행히 수술은 하지 않고 약물 치료를 하기로 하고 퇴원하셨는데,
만약 잡혀있던 날짜 그대로 수술을 하시고, 수술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아빠 상태가 달라진 상황에서 내가 어제 똑같이 저 사진을 보게 되었다면
마음이 어땠을까.
모든 가족들이 어이없어 낄낄 대며 재미있게 웃어넘길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하필 상황이 나쁘지 않을 때 내 눈에 띄게 되었던 것도 감사하다.
같이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늘었고,
오랜 시간이 지나 나중에... 온라인에서 또 다시 이 사진이 눈에 띌지 모르지만.
그때 다 같이 한번 웃고 넘어간 추억으로 기억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인거다..
그리고 '실재적이고 가상적인 환경들에 걸쳐 분포된 일상의 행동들에 대해 전통적인 인류학적 접근을 적용'했다니.. 이걸 조사한 사람들도 재미있지 않았을까, 또 어떤 카메라 폰 사용 사례들이 있길래 창발적인 행위들이었다고 했는지 궁금해져서 자료를 봤다.
그런데.. 2006년의 것이라 그런지 아주 새롭지는 않았다. -.-
그래도, 나의 폰카 사용 행태에 대해 되돌아보는 유익한 계기였다.
1. Personal Archiving
너무 비싼 책들이어서 서점에서 책 타이틀을 폰카로 기록하여 도서관에 가서 빌리려고 하는 행위(visual note taking)도 있고, 그 외 간직하고 싶은 일상의 기록들도 폰카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카메라 폰이 곧 나의 눈이고, 개인적인 시각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라고 한 참여자 말에 공감.
2. Intimate Visual Co-presence
아무래도 폰 메시지로는 현재 상황을 주로 얘기하게 되고,
폰 사진을 나누는 것은 나뉘어진 공현존(distributed co-presence) 감을 결속시켜 준다.
중요한건 사회적 관계나 친밀함에 따라 공유하는 폰사진도 달라진다는 것
(남자친구에겐 외모를 뽐내는 새로운 헤어스타일 사진 자랑을 하고, 같은 여자들끼리는 그보다는 뉴스거리가 되는 사진을 보낸다거나, 출장간 아내에겐 아들의 자전거 타는 사진을 찍어 보내는 식)
3. Peer-to-Peer News and Reporting
카메라 폰은 매일 매일 친구나 가족 사이에 나눌 얘기거리를 만들기에 좋은 새로운 툴이 되었다.
엽기적이고 재밌는 꺼리나 새로운 소식들은 아는 사람들 외에도 아무나 볼 수 있는 퍼블릭한 온라인 사이트 같은 곳에도 올리기 좋은 소재이다.
(이 글은 tossi에 올린 글의 리바이벌이다. ㅋㅋ)
다녀온지 벌써 3주가 지났네..
몽산포 해수욕장에서 모래성 쌓기 삼매경에 빠진 서진양.
바
바닷물에도 안 들어가겠다. 갯벌이나 모래도 절대 밟지 않겠다 고집부리더니
막판에 외할머니 덕에 모래 장난에 맛을 들여서
채집광 이모네 식구들이 게며 조개며 한가득 주워 돌아오고

이제 그만 짐싸서 가자고 한참을 어르고 달랬는데도
들은척 않고 노는 바람에, 다들 차 문 열고 이 아이만 기다렸다...
파도리 해수욕장은 생각보다 물이 맑고 차가웠는데
이곳에 가면 모두들 동글 동글 색색깔의 예쁜 돌 줍기에 정신없어진다.
서진이는 남이 기껏 주운 예쁜돌 가져가서 바다에 확 던지기,
파도에 밀려온 미역줄기 사람들한테 먹으라고 주기.. 를 열심히 하다가
수영복도 안입은 채로 과감해져선, 저 혼자 풍덩 풍덩 빠지며 놀았다.
출근해서 한참 정신없이 일하다가
기름 종이 꺼내려고 백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서진양도..
아빠 양말이 탐나 훔쳐 신고, 그네 타다 지쳐 쓰러지는 날이 있더라도
언제나 지금처럼 씩씩하거라!
나: 새 일은 재밌어?아마도 부지런히 동화를 쓰고 있을 친구가 주고간 문구.
Y 님의 말: 응 아주. 신기하게.. 넌 글은 쓰남 ?
나: 머 블로그가 다지. 이제 블로그도 서진이 얘기로만 채워져가고
Y 님의 말: 채인선 작가두 처음에 자기 아이 이야기로 먼저 책 내구. 그다음에 아이 자라면서 같이 동화 쓰구 그랬어. 엄마 작가들은 진짜 그렇더라. 자기 아이들이 볼 만한 연령대의 책으로 점점 자라가더라. 그것도 좋은 거 같어.
Y 님의 말: 뭐..나는 결혼을 못 할 것 같지만... 넌 결혼두 하고 아이도 있구 하니까 나름의 그런 조건을 살려서 글도 쓰고 그럼 좋겠다. 너나 호찬오빠도 계속 쓰면 참 좋을 것 같은데. 부부가 열심히 함 써봐. 아깝소. 둘 다. 나름 아끼는 커플이야. 마음속으로만 ㅎㅎ 잘 살길 바라고 있구.
Y 님의 말: 나의 결론은 일만 하지 말구 글도 쓰라는 것! 바쁘고 힘들고 아이도 있구 해서 여유가 없겠지만. 넌 그림책 만들어도 좋구.
나: T.T 정말 그래야 하는데 참 나태해졌네
Y 님의 말: 나도 이제야 좀 정신차렸어. 김연수 작가는 회사 다니면서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진 무조건 글을 썼대더라. 같이 회사 다녔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Y 님의 말: 마지막으로 요새 내가 책상에 붙여 놓은 문장을 주고 난 자러간다. 무지 힘이 되더라 ㅎㅎ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글을 쓴다 - 레이몬드 카버
나: 정말. 잘자고 좋은 글 쓰고
Y 님의 말: 너두 부디
ㆍTalks Gregory Colbert: Gorgeous video from "Ashes & Snow"
그의 얘기 뒤에 이어지는 동영상 (연설 뒤에 작품영상 나오니 꼭 보센)..
정말 감동 그 자체임!
http://www.ted.com/index.php/talks/view/id/15
“In exploring the shared language and poetic sensibilities of all animals, I am working towards rediscovering the common ground that once existed when people lived in harmony with animals. The images depict a world that is without beginning or end, here or there, past or present.”—Gregory Colbert, Creator of Ashes and Snow
기사 내용만큼은 꼭 담아두고 싶은데, 문체가 마음에 안드네..
ㆍ 진주만 폭격으로 헤어진 남녀, 60년만에 다시 만나 부부된 사연
'우리는 십대와 청년시절에 아주 많이 사랑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사랑은 그때 보다 훨씬 크다.'
과연 어떤 느낌일까..
동영상으로 보니 할아버지 더욱 귀여우시다.
오랜 만에 서진이가 와서 너무 기뻤어요.라고 적혀있었다.
선생님을 보자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어요.
이제 괜찮은 거지요? 얼른 감기가 다 나았으면 좋겠어요.
구두상자에 보관하던 낡은 가족 사진을
스캔하여 사진 파일을 pc에 보관한다
다시 dvd로 보관한다
결국 온라인 사진 서비스에 사진 파일을 업로드한다.
그러나 남는 질문:
'어떻게 하면 이런 서비스를 통해 1년, 5년 또는 15년 후에도 거기 저장된 이미지를 볼 수 있게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 이미지의 수명이 기술보다 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또 문서라면 작성에 사용된 응용 프로그램 관련하여 회사가 사업을 정리했거나 구형 파일 형식을 읽을 수 있는 버전을 제공하는 대가를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보의 수명이 항상 기술보다 오래 가니까.'
- Jonathan Schwartz's Weblog
라며 그는 Open Document Format의 필요성을 얘기한다.
(집 노트북에 문서 프로그램이 어느날 MS가 아닌 open office로 실행되었을 때
이게 뭣에 쓰이는 물건인고 알지 못했었다.. )
내 기록이나 컨텐츠가 남는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할때
백업 지원을 원하는 이유도, '내 정보'를 특정 서비스 외에서도 자유롭게 활용하고
혹시나 저런 경우와 같이 내 정보의 무궁한 보전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일 것.
실제 서비스를 만들어 운영하면서도 부득이 많은 불가피한 이유로 서비스를 닫아야 할때,
유저들의 데이터에 대한 마이그레이션이나 백업 이슈가 늘상 존재한다.
그러나 언제나 100% 만족스러운 조치는 이루어지기 어려우며,
이 사실을 늦게 알아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통탄하는 유저들도 더러 생기기 마련이다.
우리의 경우,
사진을 찍으면 컴퓨터에 저장하고(디카는 당연히, 필카는 필름스캔 한것),
바로 플리커 pro에 올리고, pc에 저장된 파일이 너무 많아지면 cd로 굽고,
정말 잘 나온 사진들은 선별하여 인화해 다른 가족들에게도 나눠주기도 한다.
사진을 찍고 보는 즐거움이 매우 크지만,
사진에 따른 작업들이 상당히 많다. 즐거움 대비 이런 수고로움이 적정한지?
어쩌면 이런 수고로움의 단계도 즐거움의 하나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인화할 사진을 고르고, 인화 맡기길 몇달째 못하고 있는 건 사실.
정보는 항상 기술보다 오래간다는 점에서.
정보와 기술이 일체가 되는 방법이 좋은 것 같은데. : 책이나 인화된 사진이나 그림처럼.
정보를 알기 위해 또 다른 도구나 응용 프로그램이 없어도, 바로 결과물을 볼 수 있는 것.
거기에 그 정보를 더 오래 볼 수 있게 할 기술이 더해지면 금상첨화.
하지만 좀 더 복잡하거나 입체적인, 영화 같은 정보의 방식은 분명 도구를 요하지만 이를 실현하는 단계에서 그 정보의 가치를 증폭시켰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볼 수 있게 한다거나, 이를 보는 행위 자체를 즐거움으로 끌어드린 등.. 나중엔 해리포터에 나온 것 처럼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신문같은 것이 실현되려나.
어디를 둘러봐도 시간/공간적 제약 없이, 나는 물론 원하는 이들과 더 자유롭게 정보를 활용할 수 있기 위한 욕망에 가속이 붙었다.
자신에 대한 기록, 알고 있는 정보, 모든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공유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 공유 뿐 아니라 그에 대해 피드백을 받는 것에 대한 더 강한 욕구가 있는 듯 하다.
피드백을 통해 다양한 감정과 사회적 존재감을 느끼는..
자신 뿐 아니라 자신의 정보에 대해서도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가.
나의 정보, 생각은 곧 나.. 나의 블로그는 곧 나..
결국, 생각한다는 것의 의미.. 데카르트 아저씨(-.-)
이 욕망을 위한 우리의 수고는 어디까지 일까.
아마도 먼 미래에는 정보의 종류나 형태도 우리의 상상을 넘어설 것인데,
과연, 정보의 불멸도.. 가능할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만든 것이나 친구들이 만든 것에 훨씬 더 강한 애착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런 것에는 보다 순수한 무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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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매우 현실적인 프로세스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처음에 플리커는 커뮤니티로부터 의견을 수렴하면서 차근차근 만들어졌다. 우리는 포럼에 하루에 50회 이상 게시물을 올렸다. 회원이 1만명 정도가 된 후에는 사람들이 서로 인사하는 매우 강력한 문화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사실 문명을 구축하는 것과 같다.
문화와 관습이 있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사람들이 이곳에서 하는 일」이다.
.....그 장소의 문화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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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지하실에서 스프를 끓이는 사람들의 가족 스냅 사진과 MP3에도 반짝이는 보석이 있다. 소셜 네트워크는 정말 놀라운 그런 것을 표면에 드러나게 하는 멋진 방법이다.
플리커가 인기를 끄는 것은 그렇게 하는 멋진 수단이기 때문이다. 플리커는 한 장의 사진을 둘러싼 모든 인간 활동을 보면서 가장 재미있는 것을 결정한다.